대학생협 학생활동가 광주역사기행 참가자 후기

지난 5월 11일부터 12일까지 연합회 학생활동가들은 기존 진행하던 문화유적답사를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5.18 광주역사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실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광주의 여러 사적지에 직접 다녀오고, 광주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민주주의와 대동사회를 꿈꾸었던 광주의 시민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대학생협의 학생활동가들이 어떤 활동들을 이어나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더하여 기존의 조합원 생활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문화유적답사를 전국 대학생들의 역사기행으로 계속해서 진행하면 어떨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2학기에도 전국 차원의 문화유적답사를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아래의 글은 광주역사기행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의 소감문입니다.


경상대생협 김상혁 조합원 (경상대생협 학생위원)

이번 광주역사기행의 주제는 '대동과 협동'입니다. 광주민주화 운동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의가 있지만 이번 기행의 주제에 걸맞는 적절한 사례를 역사탐방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대동사회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22일부터 26일간 광주에서는 공권력이 마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건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치철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 이러한 사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상사회로도 잘 알려져있는 사회주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은 개개인의 자유와 욕구를 간과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지향하는 바가 상이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완벽하게 합일을 이루어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과 환경적 제한이 있었다곤 하나, 당시의 광주사회는 이러한 이상적 사회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시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굳건한 협력을 이끌어내고 대동을 이룸으로서 가능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회가 일치단결하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목표를 수행하게 되면 그 사회의 힘은 더욱 커지는 법입니다.


현재 전국 대학교 생협은 여러모로 애로사항들과 개선점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기행을 통해서 저는 적어도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해내고 더 이상적 형태로서의 나아감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자신들에게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숭실대생협 김보경 조합원 (연합회 교육팀 학생활동가)

날짜는 봄이나, 날은 여름인 5월,

햇빛이 찾아오지 않는 그늘을 찾을 새도 없이 1박2일을 열심히 걸었다. 더운 날에는 에어컨 바람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나에게 아주 큰 도전이었다. 저번 주말처럼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을 붙잡고, 신청기간도 다 지나간 마당에 기획단 사람들을 귀찮게 해가면서 가기로 결정한데에는 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들에 대한 강한 믿음과 더불어 광주에 대한 호기심이 한 몫 거들었다.

처음 광주에 도착해 자료집을 펼쳤을 때 반신반의하던 나를 되돌아본다. 광주는 나에게 미지의 도시였다. 왼쪽 귀에 폭도라고 외치는 이들과 오른쪽 귀에 민주화의 산실이라고 부르짖는 이들 사이에서 어느 쪽 귀를 막아야할 지 고민하던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그런 고민들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생생한 사진과 장소 마다마다의 세세한 설명이 그날의 광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짧은 공부를 마치고 전남대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푸르른 잔디로 가득한 학교는 고요하면서 한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 곳곳에 걸린 현수막과 선명한 벽화와 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기 위한 안간힘으로 만든 기념관들이 시민군과 광주시민들을 기리고 있어 다행이었다. 전남대에서 학생들이 독재정치 타도를 위해 시위했던 발자취들을 돌고 나서는 518기념관을 돌고 나서 기획단의 설명과 함께 전일빌딩과 전남도청 그리고 시위의 역사가 깃든 사적지들을 돌아다녔다. 세월이 지나고 없어지고 부서진 것들이 많았으나 사적비와 그곳을 찾은 이들의 관심이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루를 끝마치고는 조선대학교에서 서로의 소감과 토의를 진행했다. 박주석 이사의 대동사회에 관한 설명이 참 기억에 남는다. 폭동이라 의심하기 무색하게도 강도와 절도가 한 건도 없이 질서가 잘 지켜졌던 민주화운동 때의 광주는 몇 년 전의 촛불시위와도 맥을 같이 하는 듯 했다. 다음날에는 묘역을 참배하며 돌아가신 열사분들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설명을 듣고 비석에 새겨진 글들을 찬찬히 읽었다. 조장인 예인언니는 설명을 하면서 몇 번이나 차오르는 마음을 쓸어내리는 듯 말을 멈췄다가 다시 하길 반복했다. 아마도 내가 느끼는 설명하기 어려운(분노와 감사 같은 것들이 뒤섞인) 감정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듯 했다. 망월동 묘역으로 넘어가면서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간 분들의 설명까지 모두 듣고 나니 평화로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참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뤄졌구나 싶었다.

다음으로 걸음을 돌린 곳은 가장 기억에 남는 518때의 영창 체험이었다. 그 활동보다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직접 체험을 도와주셨다는 점에서 마음에 와닿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세에 민주화정신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계신 분들의 정신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어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혼자 눈을 감고 고민해보기 전에 좀 더 일찍 그냥 한번 와볼 것을 그랬다. 어느 것이 선동이고 날조인지는 햇빛을 가렸던 작은 손바닥 하나만 치우면 될 일이었다. 한 톨도 허투루 볼 수 없었고 울컥 올라오는 그 무엇을 연신 삼켜내야 했다. 당연한 우리의 오늘은 당연하지 않은 그때의 시민군들이 피로 물들여 만들어낸 것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에 부끄러워야 했다.

역사기행을 시작하면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것은 기행이 끝나면서 왔어야만 했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윤상원 열사께서 하신 말씀이다.

새벽은 넘어갔고 아침은 왔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아침의 때라면 아침에 떠오른 해를 중천으로 넘기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기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5월의 게으른 따사로움을 마다한 이들의 정신을 잊지 않아야겠다.

숭실대생협 김진아 조합원(연합회 이사장, 광주역사기행 기획단)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광주에 처음 다녀왔다. 그 전까지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를 교과서에 본 것이 전부였고, 부끄럽지만 그 역사가 피부로 와 닿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광주를 가게 되었는데 그동안 나의 인식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가 처음 느낀 광주는 너무 무서웠고, 무서운 상황 속에서도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그 이후로 매년 역사기행을 기획해서 광주에 다녀왔는데, 광주를 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달랐다. 첫 방문 때에는 무서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면, 두 번째 방문에서는 분노가 생겼고, 세 번째 방문 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생협연합회에서 활동하면서 학생활동가들과 광주역사기행을 기획하여 다녀오게 된 것인데, 기획의도는 현재 대학생협에서 조합원생활문화운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문화유적답사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부터 시작하여 앞으로의 문화유적답사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역사기행을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에게 그동안 잊고 지낼 수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활동가들이 직접 이런 기행을 기획하면서 대학생협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기획의도는 참가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는 것들이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학생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학생들이 역사기행을 통해 이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좋았다. 사실 미디어를 통해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들은 많다. 하지만 그 역사들이 진행되었던 장소에 직접 방문해서 그 곳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활동이 ‘대학생협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자면 가장 첫 번째는 대학생들이 역사기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에 회원조합에서 진행하던 조합원 문화유적답사의 의미와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우리의 생활문제를 해결해보자는 학생들의 결의로 스스로 모인 대학생협의 활동가들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광주에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올해 역사기행에서 나는 특히 ‘들불야학’에서의 열사들의 활동이 크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공권력의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중심에 끊임없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키워나갔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맥락에서 나는 대학생협의 학생활동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었다. 대학생협의 학생활동의 가장 큰 흐름은 대학 내에서 공동체를 기반으로하는 협동조합의 형태를 통해 대학 내 학생들의 권리를 스스로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대학의 상황은 만만치 않다.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효율과 부를 창출하기 위한 흐름이 진행되고 있고, 그 흐름은 교육도 빗나가지 않았다.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효율과 경쟁을 강요받으면서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운영되고 있다. 흔히 대학상업화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대학 내 양극화를 부추기고, 대학 내의 구성원들의 생활마저도 효율과 경쟁에 입각하여 운영하게 했으며 그 결과로 대학생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대학생협은 대학 내에 이런 상업화의 흐름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학상업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자들이 이에 맞서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많은 고민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 고민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서 툭 튀어나오는 것일 수 없고,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모인 조합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과거 ‘들불야학’처럼 활동가들이 함께 길게 호흡하면서 담론을 생성하고 그것이 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역사기행과 활동 스터디가 굉장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분명 대학생협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고 우리 모두가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대학생협은 대학 안에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 가치는 대학의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는 일이며 이것의 골자는 대학이라는 공간의 공공성과 민주성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성과 민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고민하고 현재 그런 것들이 배제되고 오직 효율만을 따지고 있는 문제들에 맞서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고민을 시작하고 행동할 때 확신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역사기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기억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 의문이 가는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과거의 고민들을 기반으로 현재를 치열하게 고민해내는 활동의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역사기행의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